“의료공백 사태 끝나도 문제”…불신·갈등 들어찬 현장

“의료공백 사태 끝나도 문제”…불신·갈등 들어찬 현장

기사승인 2024-04-28 06:05:02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인한 의료공백 사태가 시작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출구를 못 찾고 있다. 사태가 어떤 결론으로 끝나든 의료 현장이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전공의 집단 이탈로 촉발된 의료공백 사태가 어떤 결론으로 끝나든 의료 현장이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필수의료과를 선택하지 않고, 의사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그동안 쌓아 올린 환자와 의료진 간의 신뢰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28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인한 의료공백 사태가 시작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출구를 못 찾고 있다. 의료계는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 전면 중단을, 정부는 정책 추진을 고수하며 양측의 신경전이 이어진다. 의정 갈등이 평행선을 달리는 사이 의사에 대한 국민적 불만과 증오는 터질 지경이고, 간호사 등 다른 의료계 직역 간의 반목은 더 커질 조짐을 보인다.

시민들은 의사를 향한 반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일부 커뮤니티에는 의사를 ‘의주빈(의사+조주빈)’, ‘의마스(의사+하마스)’라고 지칭하며 조롱하는 글이 올라온다. ‘미슐랭 가이드 서울 2024’에 이름을 올린 서울 마포구의 한 식당은 최근 ‘의료 파업 관계자 출입 금지’가 적힌 종이를 식당 문에 붙이기도 했다. 해당 식당은 의사단체를 향해 “의료 파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며 “생명의 존엄 앞에서 왼쪽이니 오른쪽이니 이념이나 사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환자들은 치료를 받지 못해 병이 악화될 수 있단 불안감 속에서 의사에 대한 원망을 갖는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25일 논평을 내고 “의료공백 장기화 사태로 그동안 응급환자와 중증환자가 치료 지연 및 연기로 겪은 심리적 불안과 불편, 피해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는 환자 가족의 당혹감과 분노는 상상 이상이다”라고 전했다.

간호사 등 병원에 남은 의료진과 근로자들은 의사단체 집단행동으로 생계를 위협받는 실정이다. 이들은 “더 이상 환자 생명을 볼모로 삼아선 안 된다”며 전공의들의 조속한 현장 복귀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22일 보건의료노조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대 증원을 의사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결정했단 이유로 환자들이 죽든 살든 모른 척하겠단 것이냐”라며 “지금껏 참고 기다렸지만 이제는 참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이어 “환자와 병원 노동자들이 의사단체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공의들은 “더 이상 환자를 볼 자신이 없다”며 실의에 빠졌다. 중환자실을 지키는 교수들도 “대한민국 의료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며 자괴감에 드러낸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전공의들은 “더 이상 환자를 볼 자신이 없다”며 실의에 빠졌다. 사태가 종결되더라도 사직 전공의 전원이 돌아온단 보장도 없다. 대전성모병원 사직 전공의인 류옥하다씨가 3월13일부터 4월12일까지 1개월간 서면·대면 인터뷰 방식으로 전공의들을 설문조사한 결과, 사직 전공의 1581명 중 34%(531명)는 향후 의대 입학 정원 증원 문제 등이 해결되더라도 전공의 수련 의지가 없다고 답했다.

바이탈과 레지던트 2년차 A씨는 “환자와 의사 간 관계가 파탄났기 때문에 수련을 포기한다”며 “이제 의사로서의 삶은 어떠한 보람도 없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인턴 B씨는 “매 정권마다 의사를 악마화할 것이고, 국민들은 함께 돌을 던질 것이기에 전공의 수련을 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중환자실을 지키는 교수들도 “대한민국 의료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며 자괴감을 드러낸다. 이들은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으로 근무 여건이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나빠질 것이라며 필수의료가 소생 불가능한 수준으로 붕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26일 대한중환자의학회 기자간담회에서 홍석경 기획이사(서울아산병원 중환자·외상외과 교수)는 “이 사태가 아무리 좋게 끝나더라도 전공의들이 100% 복귀하진 않을 것”이라며 “정부의 의료정책이 필수의료를 붕괴시키는 직격탄이 됐다. 누구를 위한 대책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박치민 총무이사(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는 “매년 학회에서 80명 정도의 중환자의학 세부전문의를 배출하고 있지만, 사태 종료 후 내년에도 그만큼의 전문의가 양성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며 “이번 사태 이후 중환자를 전문으로 보는 의사는 점차 줄어들 것이고 이는 중환자 진료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서지영 회장(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은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환자를 지키겠단 사명감으로 중환자의학에 몸담게 됐다. 중환자를 놔두고 어떻게 병원을 떠나겠나”라면서 “하지만 정부와 국민이 의사집단을 마치 돈만 밝히는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것을 보면서 자괴감이 든다”고 털어놨다.

사태 장기화로 의료 현장은 악화일로를 걷는다. ‘빅5 병원’으로 불리는 서울시 내 주요 대형병원 5곳(서울대·세브란스·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의 교수들은 개별적 사직에 나서고, 주 1회 진료와 수술을 중단하겠다며 ‘셧다운’을 공식화했다. 의정 갈등 해결 역할을 기대하게 했던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의료계가 불참한 ‘반쪽짜리 기구’로 출범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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