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뜨자 대형병원 마비…세계적 한국의료 ‘민낯’

전공의 뜨자 대형병원 마비…세계적 한국의료 ‘민낯’

기사승인 2024-03-08 06:05:02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전공의들의 집단행동만으로 의료현장 혼란이 극심해지는 것을 두고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전공의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의료시스템 때문”이라고 말한다. 피교육생 신분으로서 수련에 매진해야 할 전공의가 진찰, 처치, 수술, 당직까지 다양한 의료 행위를 도맡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것이다.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의 중심의 인력 구조로 재편하고 의료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7일 의료계에 따르면 소위 ‘빅5 병원’(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의 전공의(인턴·레지던트)는 2745명이다. 전체 의사(7042명)의 40%가량을 차지한다. 서울대병원은 전공의가 전체의 46.2%에 달한다. 이어 세브란스병원 40.2%, 삼성서울병원 38.0%, 서울아산병원 34.5%, 서울성모병원 33.8% 순이다. 전공의가 단체로 환자 진료에서 손을 떼면 국내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병원들부터 마비되는 이유다.

전공의는 근로자이면서 동시에 피교육생(수련의)이라는 이중 신분 보유자다. 전공의는 인턴으로 1년간 여러 진료과를 돌며 경험하고, 이후 전문 과목을 정해 레지던트로 3~4년간 수련한다. 신분대로라면 이들의 주 업무는 ‘교육(수련)’이어야 한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의료현장에서 교수들의 수술과 진료를 보조하고 입원 환자들을 살피며, 새벽 내내 응급실을 지키는 ‘핵심 인력’으로 일하고 있다.

빅5 병원이 전공의를 선호하는 이유는 이들을 비교적 저렴한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의 ‘2022년 전공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공의 월평균 임금은 397만9000원이다. 이는 주당 평균 77.7시간을 일하고 받는 대가로 계산하면 최저임금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과목별로 보면 흉부외과가 102.1시간으로 가장 길었다. 다음으로 외과(90.6시간), 신경외과(90.0시간), 안과(89.1시간) 순이었다. 연속근무도 흔하다. 전공의 16.2%는 24시간 초과 연속근무를 ‘일주일에 3일 이상’ 한다고 응답했다.

전공의들이 환자를 등지고 병원을 나서기 전인 지난달 20일 정부에 전달한 7개 정책 요구사항에는 △수련병원의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주 80시간에 달하는 열악한 수련 환경 개선 등이 담겼다. 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달 22일 성명서를 통해 “피교육자인 전공의가 없다는 이유로 병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병원 구조가 과연 바람직한가”라고 물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1만명이 넘는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한 가운데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 전용공간에 적막이 감돈다. 사진=임형택 기자


의료공백 ‘완충제’ 떠오른 PA 간호사…“합법화 논의 필요”

보건의료 전문가와 의사 선배들도 전공의들과 똑같이 “과연 제대로 된 시스템인가”라고 묻는다. 전공의들이 대거 빠져나가도 병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노동과 희생을 강요하며 쥐어짜는 식이 아닌 피교육자로 대우하는 의료 환경을 조성해 전문의로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대한내과학회 수련이사)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현재 의료 현장은 전공의에게 많은 근무 시간을 요구하고 혹사시키는 기형적인 구조로 돌아가고 있다”며 “한 명의 전공의가 20~30명의 입원 환자를 보고 있다면 10명 수준으로 조정해 한 명의 환자라도 제대로 파악하고, 전문의가 되기 위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의 운영을 합법화하고 업무범위를 명확히 해 교수, PA 간호사, 전공의, 입원전담전문로 이뤄진 팀으로 병원이 운영돼야 한다고도 했다. PA 간호사는 의사의 역할을 일부 대신해 수술, 검사, 응급상황을 지원하는 인력이다. ‘수술실 간호사’ 혹은 ‘임상전담 간호사’로 불리며 전국에서 1만명 이상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교수도 일정 부분 환자를 직접 담당하고, 숙련된 PA 간호사가 합법적으로 전공의를 보조하는 구조가 자리 잡아야 한다”며 “불합리한 의료 구조 때문에 뛰쳐나간 전공의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정부는 전문의 중심의 의료체계 새판 짜기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준 고려대 보건대학원장도 PA 간호사의 역할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지금처럼 의료 혼란이 발생했을 때 공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완충장치’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윤 원장은 “도재식 교육의 관행 속에서 병원이 전공의들에 의존하는 행태가 굳어져왔는데 이는 반드시 개선돼야 할 일”이라며 “전공의와 PA 간호사의 업무를 분류해 부여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7일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 지침’을 공개했다. 지침에는 간호사 자격별로 수행할 수 있는 의료 행위 범위가 담겼다. 시범사업에 따라 앞으로 모든 간호사는 응급상황에서 심폐소생술, 약물 투여 등을 할 수 있다.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의 경우 위임된 검사·약물의 처방을 할 수 있고, 진료기록이나 검사·판독 의뢰서, 진단서, 전원 의뢰서, 수술동의서 등 각종 기록물의 초안을 작성할 수 있다. 관리·감독 미비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면 최종적인 법적 책임은 의료기관장이 지도록 했다.

지난달 1일 복지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는 △연평균 일일 입원환자 20명당 전공의는 0.5명만 배치하도록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하고 △전문의 고용을 확대하면서 전공의 업무를 축소하는 병원에 추가 보상하며 △전공의 근무 시간을 주 80시간 이내로 줄인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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