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9월 19일, 경상남도 지역거점병원으로 뿌리내린 진주의료원이 개원 103년을 채우지 못하고 2013년 6월 문을 닫았다. 당시 홍준표 경상남도지사는 누적적자 279억원을 이유로 보건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 중앙정부와 국회의 우려와 반대에도 폐업을 추진ㆍ결정했다.
시간이 흘러 4년여가 지난 지금, 지방의료원들이 달라졌다. 자유한국당 대표가 된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경영이 개선되고 있는 지방의료원의 변화를 ‘학습 효과’라며 포장했다. 지방의료원 폐업이라는 강수가 여타 의료원에게 자극이 됐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서울보라매병원 공공의료사업단 이진용 교수(의료관리학)는 20일 ‘지방의료원의 역할’을 함께 고민하는 대한예방의학회 학술대회에서 지방의료원장을 비롯해 공공병원 종사자, 공공의료를 고민하는 의료인들에게 ‘홍준표식 학습효과’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공공의료 강화’를 정책적 주요과제로 선정하고 진주의료원의 재개원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진주의료원의 폐원 전후의 공공의료원의 변화와 쟁점을 살펴보고 올바른 정책적 방향을 설정해야한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여기에 지방의료원들의 경영실적이 2013년을 기점으로 대다수 긍정적 변화를 보였으며 2014년 34개소 중 5곳이, 2015년에는 12곳이 흑자로 전환된 결과가 진주의료원의 폐업에 자극받은 의료원들의 절박함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이 존재하는지를 자문해보라는 물음이었다.
그리고 이 교수는 동일한 질문에 “홍 대표의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냉정히 봤을 때 지방의료원의 착한 적자에 대한 인식과 개선을 위한 지원에 대한 의식이 달라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며 5가지 차원의 정책적ㆍ제도적 변화와 지방의료원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 지방의료원, “개혁의 신호탄은 올랐다”
먼저 그가 제시한 5가지 변화는 ▶국회의 공공의료 정상화를 위한 국정조사 결과보고서 채택 ▶보건복지부의 지방의료원 육성을 통한 공공의료 강화방안 확정 ▶공익적 적자에 대한 연구사업 ▶공공보건의료사업 수행에 따른 운영비 지원 근거 마련 ▶공공의료사업 수행에 대한 정책지원 확대다.
이 교수는 “그간 지방의료원은 정부에서 매년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했지만 개선이 안됐다. 비효율적이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진주의료원 폐업 이후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그 결과가 5가지 정책적, 제도적 변화”라고 말했다.
이어 “일련의 변화와 요구로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공익적 기능을 고민하고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더구나 평가와 지원체계가 갖춰지고 공익적 적자에 대한 개념이 정립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신포괄수가제 정책가산(인센티브)가 15%에서 35%로 확대돼 2016년 기준 761억원이 추가 투입됐고, 의료인력 인건비 지원이 2013년 5억원에서 2014년 50억원, 2015년과 2016년에는 각각 55억원이 지원됐다.
게다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지방의료원 우선적용으로 간호인력 수급이 원활해졌고, 시설과 관련 수가 개선의 부수적인 효과도 누렸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관장하는 지역거점병원 시설장비 지원사업으로 총 500억원이 분배됐고, 회계상 감가상각비가 제외돼 경영수지도 나아졌다.
이에 이 교수는 “이렇게 잘해준 적도 없고 병원 수준도 좋아지고 있다. 이제 인정할 건 인정하고 바꿀건 바꾸며 나아가야한다”면서 시야를 넓혀 비슷한 규모의 타지역 공공ㆍ민간병원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서비스와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 고민해 발전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 “취약계층만의 저급기관 이미지를 벗어라”
국립대병원이 다른 민간대형병원과 비교해 의료서비스에서 큰 차이가 없는 질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를 제외한 공공병원은 동일 규모 민간병원에 미치지 못하며 스스로를 그리고 주변이 ‘빈곤층만의 의료기관’이라는 인식을 깨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바꿔야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질 높고 친절하며 안전한 적정진료를 제공하는 것이 공공성이 높은 병원”이라며 “공공병원이기에 취약계층을 위한 병원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원내에서 왠만한 의료서비스는 자체 충족이 가능해야한다. 그것이 양질의 적정진료”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국립대병원은 적정성평가 17가지 항목 모두 1등급을 받아야 한다. 지방의료원은 적어도 급성심근경색, 뇌졸중, 사고 및 외상, 지역내 사망에 대한 최종책임이 아니라 사망이나 중증장애가 발생하지 않도록 중 진료권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한다”고 전했다.
민간병원보다 높은 수준의 기준을 설정한 것이기에 만약 의료원에서 3가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지역민들이 사망하거나 심각한 후유장애가 발생한다는 경고다. 더불어 일련의 기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수술실과 중환자실, 투석설비를 갖춰야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교수가 제시한 방향성에 대해 일부 의료원 관계자들은 공감의 뜻을 표하면서도 재정의 부족 문제를 들어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한 지방의료원장은 민간의료기관의 수익대비 인건비 비중이 40~50% 선에서 유지되고 있음에도 경영의 압박을 느끼는 가운데 지방의료원의 인건비는 2016년 기준 67.8%에 달하는 상황을 언급하며 변화를 위한 기반이 부실하다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심지어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발맞춰 비정규직 등의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고 있어 인건비 비중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하며 낮은 임금으로 인해 의료인력 수급의 어려움이 의료 질 향상을 위한 요구와 맞물려 가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건의료산업노조 나영명 정책기획실장도 “양질의 적정진료를 하려면 인프라 구축이 돼야하는데 그런 상황이 못 된다”면서 “많은 지원책이 있지만 필요한 시기에 집중지원이 안 되고 있다. 지방의료원도 투자할 여력을 갖출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첨언했다.
한편, 일련의 고민과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정부는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 취임 초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강화의지를 피력한 후 이렇다할 공공의료 관련 언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정부가 공공의료 발전을 위한 대책으로 어떤 것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