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중동 화약고가 또다시 터졌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으로 전 세계가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과 아랍권 간 제5차 중동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사우디아라비아의 2030세계엑스포 유치전에도 막대한 악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 총리실은 하마스 공격으로 인한 이스라엘 내 사망자가 최소 900명 이상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도 이스라엘 공습으로 팔레스타인인이 687명 이상 사망했다고 밝혔다. 양측 발표를 종합하면 부상자는 6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앞서 하마스는 유대교 안식일인 7일 오전 6시30분(현지시간)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이스라엘 남부를 겨냥해 로켓을 2500발 이상 발사했고 지상으로 무장대원 300명을 침투시켰다.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1973년 10월 발발한 이스라엘과 아랍권 간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 이후 50년 만에 가장 충격적인 충돌이다.
중동의 ‘맏형’인 사우디는 이번 분쟁과 연관이 깊다. 사우디는 전통적으로 팔레스타인 편에 서 왔다. 1948년 건국한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며, 수교하지 않았다. 사우디는 팔레스타인의 독립 국가 출범을 국교 정상화의 전제로 내걸며, 이스라엘에 양보를 요구했다. 이 가운데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장하자 이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사우디·이스라엘 간 수교를 중재해왔다.
국제사회는 하마스의 이번 공격이 이스라엘과 사우디를 위시한 수니 아랍권의 화해 상황과 연관돼 있다고 보고 있다. 이스라엘이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와 평화 협정을 맺으려 하자 ‘훼방 놓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른바 ‘중동 데탕트’가 이뤄지면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강경 투쟁노선을 고수해 온 하마스의 입지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전쟁으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 논의에는 찬물이 끼얹어졌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사우디가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수교 협상을 보류했다고 전했다. 사우디는 하마스의 공격을 규탄해 달라는 미국의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인 마흐무드 압바스에게 “팔레스타인 편에 서서 갈등을 멈추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이 중동 전역으로 격화하는 등 확전(擴戰) 우려도 나온다.
사우디가 뛰어든 2030세계엑스포 유치전도 새 국면을 맞게 될 전망이다. 지정학적 위기가 엑스포 유치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꼽히는 탓이다. 선례도 있다. 2030세계엑스포 유치에 도전장을 던진 러시아(모스크바)와 우크라이나(오데사)가 대표적이다. 러시아는 수도 모스크바를 앞세워 초반부터 공격적인 유치전을 펼쳤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등 전쟁이 장기화하자 최종 유치를 철회했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비난 여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 역시 프로젝트 실행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점 등으로 인해 후보국에서 탈락했다.
사우디도 유사한 악화일로를 걸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불안정한 중동 정세 속 사우디가 팔레스타인을 공개 지지함에 따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서방 국가가 사우디에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외에도 △수차례 불거진 인권 탄압 문제 △엑스포에 대한 시민들의 낮은 유치 열기 △도시 인프라 부족 △사막에 도시가 위치해 기후적으로 불리한 점 등이 약점으로 꼽힌다. 한국의 부산엑스포가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관련 사정에 밝은 외교 소식통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중동 정세가 불안정해짐에 따라, 근접 국가에서 엑스포는 물론 국제행사 자체를 개최하기 어렵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악화하고 있다”라며 “러시아·우크라이나가 전쟁으로 엑스포 후보국 지위를 박탈당했듯이 중동 내 엑스포 개최도 비슷한 쪽으로 국제여론이 극비 조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