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거리 응급실엔 의사가 없었다…“환자 수용 여건 마련돼야”

5분 거리 응급실엔 의사가 없었다…“환자 수용 여건 마련돼야”

기사승인 2024-02-01 17:51:43
쿠키뉴스 자료사진

환자를 태운 구급차가 병원을 찾지 못해 떠도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응급의료체계 강화 방안을 여럿 내놓았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응급의료전달체계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도록 적정 응급의료 인력을 유지하고 병원의 환자 수용 여건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와 대한응급의학회 등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부산에서 60대 여성이 수영을 하던 중 호흡 곤란과 통증을 호소하며 심정지로 쓰러졌다. 출동한 119구급대가 사건이 발생한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5분 거리의 A대학병원으로 향했지만, 이 병원은 의료진 부족 등의 이유로 심정지 환자를 받을 수 없다며 부산소방재난본부에 수용 거부를 고지했다. 하지만 병원에 이미 구급대가 도착한 상태였고, 소방본부로부터 뒤늦게 수용 불가 통보를 받은 구급대는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심정지 상태가 20분 넘게 이어지며 환자는 끝내 사망했다.

심정지 환자를 심폐소생술 할 때는 기도 삽관, 심장 마사지, 흉부 압박 등 최소 3명의 의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당시 A대학병원은 의료 인력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A대학병원 응급의학과에는 인턴과 전공의가 없어 전문의 3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1명은 휴직하고 1명은 병원을 그만둬 이날 기준 1명의 응급의학과 의사만 응급실을 지켰던 것으로 확인됐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1명, 흉부외과 전문의 2명으로 구성된 24시간 전문의 진료체제는 유지 중이다.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는 입장문을 통해 “A대학병원의 응급의학과 교수로부터 확인한 결과 내원 환자 중심으로 응급실 기능을 간신히 유지해오고 있던 상황이라고 한다”며 “해당 병원과 비슷한 거리에 있는 다른 대학병원들을 놔두고 왜 이 병원으로 구급대가 출발했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병원 밖에서 발생한 심정지는 소생률이 약 5%에 불과한데, 환자 수용 준비가 돼있지 않은 응급의료기관이 A대학병원만의 이야기가 아닌 만큼 이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진다. 환자를 수용할 능력이 없는 병원에 무작정 환자를 밀어 넣으려는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보건복지부는 ‘응급실 수용 곤란 고지 관리 표준 지침안’을 최종 검토 중이다. 이 지침안은 시설과 인력, 장비 등 응급의료 자원 부족으로 응급환자 수용이 곤란한 경우라 하더라도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선정한 응급의료기관은 중증응급환자를 무조건 수용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한 모든 결정과 책임은 ‘책임 전문의’가 지도록 돼 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현 응급의료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응급환자를 무작정 병원으로 이송한다고 해서 절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앞으로도 이 같은 일은 부지기수로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계속되는 응급의료 관련 문제를 어떻게 현명하게 조율하고 해결할 수 있을지가 관건인데, 정부는 문제가 생기면 병원과 의사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며 “대형병원 과밀화와 응급의료 취약지 문제를 해결하고, 응급의료전달체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응급실 수용 문제는 끊이질 않고 있다. 앞서 지난해 5월30일 경기도 용인에서 후진하던 차량에 치인 70대 남성이 수술이 가능한 병원 중환자실을 찾다가 2시간여 만에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해 3월 대구에서는 건물에서 추락한 10대 소녀를 구하기 위해 119구급대가 신고 4분 만에 도착했지만, 응급실을 찾지 못하고 2시간 넘는 시간을 길에서 흘려보낸 바 있다.

‘응급실 뺑뺑이’로 이름 붙인 응급의료 관련 언론보도들이 환자와 의사 관계를 악화시켜 국민 불안감을 자극하고, 부담감을 느낀 응급의료 현장 의료진의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 공보이사는 “응급의료 현장에서 수고하고 있는 많은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사기를 꺾고, 응급의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조장하는 ‘응급실 뺑뺑이’ 명명과 과도한 보도에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응급의료체계를 지속 강화해나간단 방침이다. 이날부터 병원 이송 전(前)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체계 ‘Pre-KTAS’가 본격 시행됐다. Pre-KTAS의 핵심은 119구급대가 판단하는 중증도 분류체계를 병원 의료진의 기준과 일치시키는 것이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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