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상복부 초음파, 뇌 자기공명영상(MRI)에 이어 올해 상반기 중 하복부·비뇨기 초음파도 건강보험 급여 적용 기준이 축소되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의 ‘문케어 지우기’가 계속될 전망이다. 이를 두고 여야의 해석이 갈리고 전문가들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에서 환자의 혼란과 피해가 없는 방향으로 신중하게 정책을 결정해야 한단 지적이 나온다.
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관련 질환이 구체적으로 의심되는 등 의학적으로 꼭 필요한 검사인 경우에만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방안을 지속 추진할 방침이다. 이에 복지부는 지난해 12월26일 ‘하복부·비뇨기·검진당일 초음파 급여 인정기준 개선(안)’을 마련해 이달 중 행정예고를 거쳐 확정 후 올해 상반기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개선안을 보면 질환이 의심되는 등 의학적으로 필요한 때를 제외하고 수술 전 위험도 평가 목적의 하복부·비뇨기 초음파 검사는 급여가 인정되지 않는다. 검진 당일 초음파 검사는 진료의사의 의학적 판단 근거 등 구체적인 사유가 진료기록부 또는 판독소견서에서 확인되는 경우에만 급여를 받을 수 있다. 지금은 특별한 사유 없이 검진 당일 진찰료와 초음파 검사를 일률적으로 청구하는 경우에도 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지난해 2월 발표한 정부의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방안’의 후속 조치다. 단기적으로 불필요한 재정 낭비를 줄여 필수의료 보장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는 것이 골자다. 이를 통해 복지부는 일부 남용 사례가 확인된 MRI, 초음파의 급여기준을 개선하고 이상 청구 경향이 뚜렷한 일부 기관에 대한 심사를 강화했다.
윤 정부 출범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일명 ‘문재인 케어’(문케어)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지난해 7월 상복부·다부위 초음파 관련 급여 인정 기준을 명확히 한 데 이어 10월부터 진료의의 판단에 의해 뇌출혈, 뇌경색 등 뇌질환이 의심되는 두통과 어지럼증에 한해 MRI 검사 시 건강보험이 적용되도록 변경됐다.
건강보험 보장 축소에 대한 여야의 시각은 엇갈린다. 이는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도 뜨거운 감자였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MRI를 급여화하기 전인 2017년과 2022년을 비교하며 MRI 촬영 횟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을 두고 문케어를 ‘전 정권의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취약계층의 의료접근성이 향상되고 조기에 질환을 진단함으로써 오히려 병의 중증 진행을 예방해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이로운 제도라고 맞섰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인 만큼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이은혜 순천향대학교 부속 부천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의학적으로 꼭 필요한 경우에만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며 “국민들의 의료 이용이 워낙 많기 때문에 건강보험 보장성 축소에 따라 진료량이 줄어든다고 해서 병을 놓치진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건강보험 보장 축소라는 말도 어폐가 있다고 했다. 잘못된 정책 표현이 환자의 혼란을 키우고 여야의 정치적 갈등을 확산시킨단 지적이다. 이 교수는 “정책 취지를 올바르게 전달하려면 과도하고 불필요한 의료 이용은 급여로 인정하지 않는 대신 의학적으로 필요한 진료, 특히 중증질환에 대해 보장성을 강화하는 정책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며 “의학적 필요도와 수요를 구분하고 종별 의료기관 간 환자 의뢰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장성 강화 정책이 건보 재정을 갉아먹는단 정부와 여당의 주장에 비판적인 목소리도 있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작년 감사원이 지적한 초음파와 뇌 MRI 검사 중 남용되는 진료비 규모는 2000억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약 9%에 불과했다”며 “바꿔 말하면 약 90%는 혜택을 본 셈이기 때문에 일부 남용이 있었지만 정책 효과가 훨씬 컸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제도 개선 전과 후를 명확히 비교·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제도를 바꾸고 난 다음의 변화를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보장을 축소해서 남용이 줄어드는 대신 검사를 못 받는 사람들이 생길 텐데, 이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의 보장 축소 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6일 강준 복지부 의료보장혁신과장은 “의학적 필요도 중심으로 MRI·초음파 급여기준을 명확화해 재정 누수 요인을 차단하고, 절감된 재원을 필수의료 분야에 투입해 건강보험 재정이 꼭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도 신년사를 통해 “국민이 납부한 소중한 보험료가 적절하게 쓰이도록 보험 재정을 튼튼하게 관리해야 한다”며 “과잉 진료나 검사를 줄이는 등 올바른 의료 이용을 돕는 ‘현명한 선택’이 확산되도록 적극 지원하고, 과다 의료 이용에 대한 합리적 관리 방안도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